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3년, 효과는 어느 정도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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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3년째..효과는 어느정도였을까?
퇴사 이유 1위로 자주 꼽히는 게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찍히거나 출신·외모·성향 등 갖가지 이유로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 자신과 가족의 생계 때문에 꾹꾹 참지만, 참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생기고, 군 의문사에 대한 진상조사도 이뤄지곤 했지만 직장은 예외였다. 성인이고 사회인이니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오는 7월이면 이 법이 시행된 지 만 3년이 된다.
■업무상 질책이라도 지나치면 ‘괴롭힘’
법이 규정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 여기에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을 경우’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래서 ‘업무상 필요한 질책’이라도 ‘적정 수준’을 넘으면 ‘괴롭힘’으로 본다.
한 어린이집 학부보들이 교사 A씨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어린이집 원장은 A씨를 불러 업무상 미진한 점을 수차례 질책했다. ‘교사 회의’에서 공개사과도 요구했다. A씨는 학부모회의에 불려나갔고, 학부모들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은 뒤 실신했다.
법원은 어린이집 원장의 질책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에게 질책받을 사유가 있더라도 “일상적인 지도 또는 조언 수준을 넘어서 지속적이고, 공개적인 질책을 통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정신적 고통을 가하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당한 전보도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여기서 ‘부당’ 여부를 가르는 것 역시 ‘적정성’이다. 동료들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B씨는 회사로부터 면보직 발령을 받았다. 근무장소도 배정받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거나 필수시설도 없는 곳에서 일해야 했다. 회사는 4개월이 지나서야 B씨의 징계절차에 착수했다. B씨에 대한 사측의 조치에 대해 재판부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대기발령’이라고 판단했다. 또 ‘대기발령은 3개월 이내’여야 한다는 사칙에도 위배된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봤다.
그렇다고 시간이나 장소가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직장 내 성회롱’ 사건 관련 판결에선 ‘회식을 마친 후 귀가하는 도중은 회사의 업무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전’이라며 업무연관성을 인정한 경우도 있다. 또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괴롭혀야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직장에서의 우위’에는 ‘지위의 우위’뿐 아니라 ‘관계의 우위’도 포함된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직위가 낮더라도 ‘피해자의 상급자와 합세하는 방법으로 관계상의 우위를 점한 경우’ 직장 내 우위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
또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를 종용하고 피해자의 진술 내용을 가해자에게 유출한 사용자에게 1200만원의 배상 책임을 지웠다.
박점규 ‘직장갑질 119’ 운영위원은 11일 “법적 근거가 없어 위자료 인정이 안되던 괴롭힘 행위에 대해 배상 판결이 나오기 시작하고, 그 규모도 200~300만원 수준에서 1000만원에 달하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징계 무효 소송 등을 우려해 직장 내 괴롭힘에 소극적 대처하던 회사들이 보다 적극적인 징계에 나서게 된 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3년 간 거둔 성과”라고 했다.
폭언·폭행, 부당전보, 공개질책, 성희롱 등 명확한 위법 행위가 수반되면 입증이 용이하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괴롭힘이 훨씬 많다. 이 경우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증명하기도 어렵고, 설혹 증명한다고 해도 인정받기는 더 어렵다.
한 노무사는 “모든 팀원이 피해자와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밥도 같이 안먹는 이른바 ‘투명인간 갑질’, 유독 피해자에게만 ‘업무적정성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을 정도의 지적’을 집중하는 행위, 피해자에게만 업무를 지나치게 많이, 또는 적게 주는 행위 등은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의 절반 가까이는 ‘폭언’이다. 녹음이나 메시지 등 소위 ‘딱 떨어지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증거가 있더라도 수집하기가 쉽지 않다. 피해자는 대개 직장 내에서 하급자다. 가해자보다 근무 기간이 짧고 아는 사람도 적다. 목격자나 동료도 대개는 가해자와 친분이 있거나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이기 쉽다. 피해자가 동료들로부터 진술서 한장 받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지난해말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1만3000여건 중 43.5%가 ‘입증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취하됐다. 박성우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 사건처럼 피해자 중심주의를 확대해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합리성에도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등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대로 가해자까지 처벌하면 ‘괴롭힘 인정율’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해자가 형사재판에 넘겨지면 ‘범죄 입증은 무죄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대원칙이 적용된다. 그렇지 않아도 입증이 어려운 ‘괴롭힘 행위’에 대해 무죄 판결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형사재판의 무죄 판결을 민사재판에서 반박 증거로 내밀 경우 피해자가 배상받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법 조항에서 사용자의 조사와 조치 책임을 보다 구체화하고, 성희롱 예방 교육처럼 괴롭힘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현장의 변호사와 노무사들은 법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박성우 노무사는 “‘직장 내 성희롱 금지법’이 직장 내에 성인지 감수성을 뿌리내리게 했듯이 괴롭힘은 범법 행위라는 ‘괴롭힘 감수성’을 사용자나 노동자가 갖게 될 때 법이 당초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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